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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국어 문제집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의 국어 문제집을 보았다. 

문제만 열심히 풀어놓고 채점은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스스로 공부할 것을 강조하며 모든 것을 딸에게 일임했던 나는

오늘 생전 처음 아이의 문제집을 혼자 채점해 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왜 딸아이가 이제까지 채점을 하기 싫어했는지 알것 같았다. 

초등학교 국어 문제집에 자기 생각이나 감상을 묻는 서술식 문제가 의외로 많았다. 

놀라운 것은 그 서술식 문제의 정답까지 해답지에 간명한 문장으로 나와있다는 것이다.  

감상에도 정답이 있는가?

"은영 세탁소"이라는 동시 한 편이 교과서에 있었다.

딸아이의 이름을 걸고 세탁소를 하는 아버지를 부끄러워 하다가

이제는 남의 더러움도 잘 닦아주는 딸이 되겠다는 구태의연한 시였다. 

서술식 문제, 은영의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정답,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삶

딸의 답, 동네에서 더러운 빨래를 세탁하는 일

왜 세탁소를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 

딸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은 그만큼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나는 딸의 답이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시에서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빨래를 자신의 딸의 옷처럼

정성들여 빨아주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걸 부끄럽다고 여긴 것은 어린 딸일 뿐이며,

그것도 자기 이름이 들어가서 그런 것 뿐이었다. 

정답이라고 나온 것은 순전히 어른들의 생각,

그것도 아주 삐뚤어진 어른들의 생각일 뿐이다.

"완행 버스"

흙먼지 날리는 언덕길을 돌아다니면서

시골 어른들과 짐을 실어주는

고마운 버스에 관한 글이다.

문제, 사람들의 힘든 처지를 나타내는 단어는? 

네 개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였다.  

(정답) 언덕길

딸의 답, 흙먼지

흙먼지가 안 될 이유가 없다. 흙먼지가 날린다는 것은 비포장도로라는 얘기고,

비포장 도로는 개발이 안 된 시골길을,

시골길은 농촌의 고단한 삶을 나타내는 은유로 손색이 없다.   

느낀 점을 묻는 서술식 문제에

아이는 "완행 버스는 만능이다"라고 적어두었다. 

정답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를 배웠다."였다.

서술식이나 객관식이나 할 것없이 컴퓨터 칩을 교체하듯이

아이의 상상력을 말끔히 제거하고

어른들의 편협하고 삐뚤어진 생각을 집어넣으려는 국어 문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일줄이야.

국어 교육을 이렇게 하면서

창의적인 논술을 쓰라고 다그치다니...

나는 앞으로 딸 아이의 국어 교육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집 풀리면서 "이건 문제가 잘못 되었어"

이렇게 할 것인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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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3 17:19 2008/05/1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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