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마


[순천] 사람보다 먼저 생명의 보금자리를 지켜준 나무


전남 순천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은 향림사 앞 마을숲

휴가 여행 떠나시는 분들께 드리는 부탁 덧붙입니다

작성일 : 2005. 7. 25
답사일 : 2005. 5. 4



폐허에까지 이르는 등 오랜 변란을 겪은 뒤, 새로 곱게 단장한 순천 향림사 경내에 다소곳이 자라난 한 그루 소나무.  2005. 5. 4

덥습니다. 백두대간을 넘어 동해를 향해 부는 바람도 지칠 만큼 무더운 날씨입니다. 그렇게 무더운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강원도 최북단인 강원 고성에서부터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까지 꽤 긴 여정을 다녀왔습니다.


올 여름 들어 최고로 무더운 날씨였던 지난 주중, 눈으로는 동해의 광활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시원스러울 수 있었지만, 몸은 무더위에 지쳐 꿈쩍하기 싫을 만큼 가라앉는 힘든 날씨였습니다.


화마(火魔)에 짓밟혔던 양양 낙산사의 나무들에서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아우성에서부터 늘 푸르른 기상의 천연기념물인 설악동 소나무, 조선 사대부가의 기품을 간직한 강릉 선교장의 회화나무, 신사임당과 율곡의 손길을 기억하고 있는 오죽헌의 매화와 배롱나무, 동해안 최고의 절경이라 할 만한 삼척 죽서루의 회화나무, 남근숭배사상이 얼굴을 붉히게 하는 해신당 남근목들. 모두가 이야기 풍부한 크고 멋진 나무들이었습니다.


아, 참. 솔숲닷컴과 ‘나무를 찾아서’ 메일진을 받아보시는 분들께 한 가지 부탁 말씀 드립니다. 혹시 이번 휴가를 강원도 양양 하조대에서 여유 있게 보내실 분이 있다면, 그곳에서 한 그루의 소나무를 찾아보시면 어떨까 하는 부탁입니다. 이번 답사에서 찾아보려 했던 나무였는데, 제가 찾지 못했거든요.


옛날 서로 사랑하던 하씨댁 총각과 조씨댁 처녀가 이승에서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나무에 줄을 매어 물 속에 뛰어든 소나무입니다. 나이가 380살 쯤 됐고, 키 35미터, 가슴높이 줄기둘레 7미터나 되는 큰 나무입니다.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인데, 자료에 따르면 나무 앞에 입간판이나 둘레에 펜스는 설치돼 있지 않다고 합니다. 위치는 하조대 해수욕장이 있는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 3번지입니다.


제가 찾으려고 하조대 해수욕장 주변을 한바퀴 돌기는 했는데, 쉽게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마을 분들을 찾아 여쭤보면 알 수도 있었겠지만, 더위에 지친 탓에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나무입니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려니, 나무에 담긴 사연이 절절해 아쉬움이 남는군요. 혹시라도 하조대에서 여유있게 머무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나무를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지난 5월, 순천에서의 답사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습니다. 순천시 도심의 평지 가람 향림사 앞에서 만났던 큰 나무들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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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사 앞은 ‘향림공원’이라 이름 지은 아름다운 마을숲에서 하늘 높이 솟아오른 서어나무 줄기.  2005. 5. 4

도심에 자리잡은 사찰에서 크고 오래된 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입니다. 값나가는 땅 때문인지, 도심의 사찰들에서는 나무들이 서있어야 할 자리보다 사람들이 들고 날 자리가 더 요긴하지요. 순천 향림사를 찾은 것은 도심 사찰이면서도 보호수로 지정할 만큼 아름답고 오래된 나무가 7그루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향림사는 순천시내의 석현동만 찾으면 금세 찾을 수 있습니다. 석현동 마을 길로 들어서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향림사입니다. 까닭은 향림사보다 향림사 앞의 마을숲이 빚어내는 도심 속 푸른 공원의 아름다움을 놓칠 수 없는 때문입니다. 이 아름다운 마을숲에는 ‘향림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순천 시내의 북쪽 마을인 석현동은 순천대학교와 순천경찰서를 끼고 도는 개울, 석현천을 따라 이어지는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불과 2킬로미터 이내의 오른쪽에 향림사와 향림공원이 있습니다. 뜻밖에 아름다운 마을숲에서 발길을 멈추고 잠시 땀이라도 들일라치면, 숲 안쪽에 자리잡은 평지 가람, 향림사 일주문과 일주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활짝 펼쳐진 향림사 담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주변에 향기로운 차나무가 숲을 이룰 만큼 잘 자란다 해서, 향림사(香林寺)라 이름붙인 이 절의 지금 모습은 도심의 여느 절집들과 마찬가지로 새로 단장한 집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사찰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 화마(火魔) 수마(水魔)를 피하지 못한 적이 여러 차례 있어, 옛 절집은 모두 사라졌던 것입니다. 지금의 전각들은 그런 험난한 세월을 거친 뒤, 모두 새로 지은 것들이어서 새로 지은 절집처럼 보일 뿐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향림사는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창건했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당시의 유물은 하나도 없는데, 이같은 창건 관련 기록은 조선 철종 4년(1853)에 절을 중건하며 작성한 ‘향림사중수기’에 나옵니다.


창건 이래 향림사의 사정은 알 수 없는데, 큰 법당 앞에 있는 석탑 2기가 고려시대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짐작하기 때문에 사세(寺勢)가 가장 번창한 것은 고려 때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향림사 담벼락에 붙어서 자라난 푸조나무.  2005. 5. 4

향림사가 위치한 곳은 풍수지리에 따르면 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 즉 ‘비봉포란(飛鳳抱卵)’형입니다. 이는 용의 정기가 한꺼번에 모여있는 것이어서, 땅기운이 너무 강한 곳입니다. 이런 위치에서는 넘치는 땅의 기운을 적당히 눌러줘야 한다는 게 풍수지리의 원리입니다. 바로 풍수지리에 대가인 도선 스님은 이같은 생각으로 이곳에 절을 세운 것이라고 전합니다.


향림사 바로 앞으로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석현천이라는 개울이 흐르는데, 옛날에는 큰 물이 들면, 이 개울물이 넘쳐 수해(水害)를 입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1924년에 향림사에 주석하게 된 죽암(竹庵) 스님은 수재를 막기 위해 절집과 개울 사이에 많은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때 심은 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라나 지금은 향림사 앞의 아름다운 마을숲을 이루게 됐습니다. 죽암 스님이 심은 나무들이라 하면 나무의 나이는 80살이 조금 넘은 나무들인데, 각별한 보살핌을 받은 탓인지, 수세(樹勢)가 무척 좋습니다.


그때, 소나무를 많이 심었기에 향림공원 숲은 늘 푸르른 솔숲입니다. 이 숲 안에는 그러나 죽암 스님이 나무를 심기 훨씬 전부터 자리잡고 자라던 큰 나무들이 여럿 있습니다. 푸조나무, 검팽나무, 서어나무, 소나무 등 7그루의 보호수들이 그것입니다.


보호수임을 알리는 입간판에는 이 나무들을 보호수로 지정할 1974년 당시, 250살 정도로 추정됐다고 표시돼 있지만, 산림청 자료에는 푸조나무 3그루 중 2그루가 400살, 1그루는 350살로 돼있고, 서어나무는 300살, 검팽나무 2그루는 각각 250살, 220살로 돼있습니다.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면, 최소한 향림사의 푸조나무들은 산림청 쪽의 자료가 맞는 듯합니다. 250살 정도로 보기에는 그 뿌리 부근의 줄기가 안고 있는 세월의 연륜이 훨씬 깊어보입니다. 크기도 그렇지요. 숲 중앙에 우뚝 서있는 서어나무도 250살은 훨씬 넘게 보이는 노거수(老巨樹)입니다.


육중하게 뻗아나온 향림사 푸조나무의 뿌리 부근 줄기. 크기나 생김새를 보아 400살은 돼 보이는 큰 나무다.  2005. 5. 4

하긴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나무들이 불과 1백년도 채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나이를 알린다는 게 무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그저 향림사라는 절집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스님과 그 절의 불자님들이 안간힘 쓰기 훨씬 전부터 나무들은 절집과 그 절집에 깃들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해왔다는 것만이 소중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다른 어느 계절보다 나무가 소중하게 여겨지는 여름의 한복판입니다.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잡고 사람의 생명을 보듬어 안은 나무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성실하게 나무 곁에 보금자리를 튼 사람의 생명을 지켜냈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지켜준 나무들이 사람과 더불어 더 오랜 세월을 늘 푸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이 우리를 지켜준 것처럼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할 때입니다.

푸조나무, 검팽나무, 서어나무 소나무 등 7그루의 늘씬한 보호수가 지키고 있는 향림사 앞 마을숲.  2005. 5. 4


글/사진 :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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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6 11:08 2008/09/0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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